
오랜만에 접하는 일이라서 블로그에 접속해서 알아보니 기린표 통성냥은 중국에서 알을 수입하여 통에다가 집어넣어서 파는 곳이라 한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하여도 성냥은 어느 가정이나 필수품으로 우리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경북 의성에 성광성냥 한곳만이 꺼져가는 불씨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그 시절의 아련한 나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보고 싶었다. 일본인이 인천에 세운 조선성냥을 시발로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으로 세운 공장이 대한성냥이다. 인천이 성냥공장으로 이름을 얻었던 이유는 인천에 공장이 세워져 처음 들어선 것은 압록강 쪽에서 목재 조달이 원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유엔표 팔각성냥, 기린표 통성냥, 비사표 갑성냥, 향로성냥, 덕용성냥등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져버린 이름들의 무수한 공장이 성업하던 그 시절의 기억은 힘들었던 우리 생활을 반영해주는가 싶다.
70년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석유곤로가 가장 인기있는 상품으로 어머니의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이기 위해서 통성냥이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성냥이 비라도 와서 집안에 습기가차 눅눅해져서 불이 잘 켜지지 않을까봐서 따뜻한 부뚜막위에 신주 단지를 모셔놓듯이 보관도 잘해야 하루가 편했다. 그래서 보완한 성냥은 성냥골에 두약 즉 알맹이가 까만 성냥은 습기에 강하도록 만들어져서 두약이 경쟁력이 있었지만 일반 성냥보다 비싸서 잘 사용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성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나의 가슴에 아직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만큼 손쉽고 꼭 필요한 필수품이었기에 머릿속에 지금까지도 더욱 각인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노원신문 415호 생활의 발견 칼럼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처님 오신날 (0) | 2008.05.12 |
---|---|
한자락 계곡바람은 산을 흔들고 (0) | 2008.04.29 |
수락산자락, 돌뫼의 여름 (0) | 2008.04.20 |
만개한 꽃 (0) | 2008.04.13 |
꽃들의 향기 (1) | 2008.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