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신문기사내용 2009. 9. 14. 10:51


야간통행금지와 방범대원

지금 20대 젊은이들이야 모르겠지만 40대 이상의 장년층은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나는 추억의 이야기이다. 1945년부터 1982년1월까지 37년간 대한민국의 밤 12시는 그야말로 암흑의 밤이었다.

통행금지는 미군정 사령관 존R하지 중장의 군정포고 1호로 시작되어 긴 세월동안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처럼 이용되어 왔었다. 6•25전쟁을 거치고, 경제는 피폐할 대로 피폐하고, 치안마저 불안한 시절이라 야간통행금지는 범죄를 줄이는 순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자정을 알리는 사이렌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 방범대원에게 걸리지 않으려고 골목길로 숨어서 집으로 가야만했다. 골목길에도 호루라기를 불면서 방범대원이 순찰했다. 야간에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은 남의 집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나 다니는 걸로 알던 시기이었다.

국민들은 순수했었고 통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시기여서 방범대원에게 걸리는 것 자체가 중죄인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통행금지에 걸리면 방범대원에 손에 이끌려 파출소로 끌려가서 벌금을 물고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새벽4시 이후에 집으로 귀가 할 수가 있었다. 당시 경제여건에 비해 단속에 걸린 벌금은 무척 과한 것이어서 호기조차 부릴 수 없었다.

방범대원의 힘은 지금의 경찰의 권위보다도 높았다. 바로 자기집 대문 앞이라도 걸리기라도 하면 통사정을 해야했고, 그나마 마음씨 좋은 아저씨라야만 봐주었지 영락없이 파출소 행이던 시절이다

통행금지 시간이 다가오면 집으로 가기위해 급하게 종종걸음을 해야 했다. 지금처럼 24시간 영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마땅한 장소도 없던 시절이라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가서 새벽에 가야만 했었다.

하지만 외국인을 위하여 24시간 영업이 가능했던 관광호텔 나이트클럽이 유일하게 영업을 했다. 12시가 넘으면 문을 걸어 잠그고 새벽 4시까지 당시 열풍처럼 유행하던 디스코를 추면서 밤의 열기 속에서 젊음을 불태우는 놀이 공간이었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군사정권의 억압적인 사회풍토가 국민의 기본권과 신체적 자유를 억압을 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시대적인 배경이 힘든 시절이라 아주 작은 메아리에 불과 했었다.

통행금지가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정권이 이용한다는 비판도 1982년 야간통행금지 해제와 더불어 없어지게 되었다. 통행금지가 해제되면 범죄가 증가될 것이라는 주장도 기우에 불과하였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중고교생의 두발 및 교복자율화가 시행되었다. 한동안은 학생들은 일제시대의 유물 교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학교엘 갔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또다시 교복을 입고 있다. 통행금지 해제와 두발자유화 이후 생활문화가 크게 바뀌었다. 24시간 영업하는 영업장이 늘어나고 외식문화도 생겨나서 심야영화를 보고 포장마차에서 한잔 걸치고 해장국을 먹으며 속을 달래며 늦은 귀가를 하여도 통제 받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는 신세계 같은 시기에 살고 있다.

노원신문 460


posted by 파란한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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