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열차와 삶은 계란
기차여행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청소년들도 많겠지만 지금과 예전의 열차의 풍경은 느낌이 조금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랜 세월동안 철길을 달리는 열차에는 여러 가지 애환이 묻어나는 이야기가 있다. ‘빠아앙~’ 유난히도 큰 기적소리 울리며 레일 위를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만 보아도 여행을 떠나고픈 마음이 든다.
내 청소년기의 기차는 지금처럼 여행이라기보다는 먼 길을 떠나는데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단순한 이동의 수단과 여행으로 느끼는 감정은 지금과는 다르게 느낀다.
최근에 KTX를 타고 다녀왔기도 한데 완행열차를 타본지가 언제인지 모르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학교 고학년으로 기억되는데, 사촌형과 둘이서 열차를 타고 시골에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손을 잡고서 청량리역까지 배웅해 주고 열차표를 손에 쥐어 주고는 ‘잘 다녀오라’는 당부의 말을 하시고는 열차가 출발하는 것까지 지켜보시고 계셨다.
우리가 탄 기차는 역이란 역마다 서는 완행열차여서 참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열차가 흔들거리면서 출발하자 그 당시에도 홍익회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저씨는 바구니에 삶은 계란 이며 오징어, 사이다, 빵을 담아서 통로를 오가면서 ‘심심풀이 땅콩 있어요. 오징어 있어요.’ 외치면서 통로를 오고간다. 먹고 싶은 것도 많았고 사고 싶은 것도 많지만 돈이 없어 마음대로 살수는 없었다. 가는 동안 배고프지 말라고 든든히 밥을 먹고서 기차를 탔지만 삶은 계란이 왜 그리 먹고 싶던지 형에게 졸라 사먹는데 꿀맛보다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오징어나 김밥은 비싸서 감히 사먹을 생각조차 못했고, 사이다도 용돈을 아끼고 아껴야 계란과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철거덩 철거덩~’ 바퀴와 레일이 부딪치는 굉음을 내면서 덜리는 열차는 역마다 정차했는데, 큰 역에는 잠시 쉬어가는 시간도 있었다. 그곳에는 의례 가락국수를 파는 포장마차 같은 판매소가 있었다. 잠시 내려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락국수를 급하게 후루룩 드시고 타는 모습은 내심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때는 그리도 맛있게 보이던 가락국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많아서 아이들이 입맛대로 고르고 먹지만 예전에는 선택이랄 것도 없었고 거의 정해진 것만 먹는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 시절의 이야기가 가슴에 아련한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세월을 거역할 수 없는 아름다운 중년으로 어린 시절 행복이라는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
노원신문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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